표현의 자유 인정하지만 발언의 파장도 고려해야
불필요한 상대방 자극은 득보다 실이 커 신중 필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신세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신세계)

[딜라이트 장영일 기자] "좌우 없이 사이 좋게 싸우지 말고 우리 다 같이 멸공을 외치자."

과거 권위주의 체제 시절에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사용됐던 구호인 '멸공'이란 단어를 소환한 인물은 정치인이 아닌 한 재벌 기업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최근 SNS에 다른 국가 체제에 대한 혐오 발언을 지속적으로 올리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스타그램은 지난 5일 "폭력 및 선동에 관한 인스타그램 가이드라인을 위반한다"며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에 대해 그는 "갑자기 삭제됨. 이게 왜 폭력 선동이냐.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이라는 게시물을 올리며,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나 75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유명 인플루언서 겸 재벌 기업가의 '멸공' 발언은 수많은 추종자들과 보수 정치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본인으로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한 발언을 한 셈이다. 

정치권은 이때다 싶은지, '멸공'이란 구호를 함께 외치며 편가르기와 상대를 자극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 부회장이 멸공을 외친날 이마트에서 장 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리며 “멸공! 자유!”라고 적었다. 또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자택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멸치와 콩을 샀다고 SNS에 올려 마치 '멸공' 발언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정 부회장의 뒤를 이은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의 '멸공' 응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정치적 의사표시이지만 우리와 교역하는 공산체제 국가들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은 엄연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많은 기업을 거느린 재벌 기업가나 정치인들의 '멸공' 주장은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공산당 체제 국가에서 열심히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하지 않았다면 정 부회장이 과연 '멸공'이란 표현을 반복해서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중국의 보복이 무서워서, 또는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하여 '멸공'이라는 단어를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있는 만큼 재벌 기업가라고 해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개인이 아닌 수많은 종사자들이 몸담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라면 본인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감안해 용어를 선택하고 발언 수위를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드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이 작심하고 경제보복을 가할 경우 어떤 기업도 중국에서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중국을 절대 자극해서는 안되기에 알아서 입조심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필요할 경우 정치적 입장을 얼마든지 밝힐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이나 북한이 사회주의 수호를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공산주의 국가와 많은 교역을 하면서 시도때도 없이 "멸공"을 외친다면 과연 해당 국가에서 온전히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까. 10일 주식시장에서 정 부회장과 연관있는 신세계의 주가가 급락하고, 일부 네티즌들이 신세계 불매운동 스티커를 제작해 공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대기업 총수의 말한마디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소속 기업들과 임직원들,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무게감을 인식하고서 용어나 사진 선택, 표현 방법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 부회장처럼 수만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기업가라면 더욱 그렇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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