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원 칼럼] 정부 당국의 '금융권 때리기' 마냥 박수칠 일인가?
정부와 금융당국이 연일 금융권을 질타하고 있다. 행동대장 격인 금융감독원장이 앞장서서 금융권을 압박하고 나서자 한동안 뒷짐을 지는 듯 하던 금융위원장도 거들고 나섰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금융 공공재론’을 제기하며 힘을 보탰다.
금융당국이 문제를 제기하는 논리는 대략 이렇다. 금리 상승으로 소상공인이나 금융약자들은 고통을 받는데 고객돈으로 장사하는 은행들은 앉아서 이자장사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올려 성과급으로 나눠 갖는 등 돈잔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등 역대급 실적을 올린데는 과점체제의 영향이 큰 만큼 이 참에 과점체제를 약화시키는 구조 개선에 나서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은행 '돈잔치'는 누구나 공감하듯 고객은 분명히 어려워졌는데 고객에 돈을 빌려준 은행은 돈을 벌었지만 어떠한 혁신적인 노력을 했고 서비스를 했느냐에 대한 마땅한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성과급은 올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 대통령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것에 대해 질문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서적으로 수긍이 가는 얘기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은행들로서도 억울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우선 은행들의 이익이 증가한 배경은 금리 상승인데 이는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의 영업구조상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이익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이 같은 영업구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작년 상반기부터 은행들이 분기별 역대급 실적을 거두면서 사상 최대 이익은 예견된 것이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의 비용절감을 “약탈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은행들이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을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은행의 구조조정 모습을 보면 금융 취약층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지점 수를 줄인다든가 고용 창출 이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지만 인터넷, 모바일 뱅킹이 보편화하면서 지점을 찾는 고객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기업 논리상 많은 비용이 드는 지점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은행이 경쟁적으로 고용을 줄이는 행태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비대면 거래가 보편화하는 상황에서 인력조정은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만큼 수익성을 강화해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곤란하다.
성과급을 올린 것도 ‘국민 정서를 살피지 않은 눈치없는 행동’이라고 꼬집을 수는 있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돌아가면서 ‘이지메’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하기는 그렇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만큼 그 과실의 일부를 종업원과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기업 자본주의에서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그리고 금융사들은 이전에도 많은 성과급을 지급해왔다.
대통령실과 금융당국의 서슬에 화들짝 놀란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서둘러 내리고, 돈을 모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취약차주 등을 지원하는 대책을 발표하는 등 ‘성의 표시’에 나서고 있다. 당장 은행들의 적극적인 금리 인하로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가 5%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대출금리 인상으로 힘들어하는 차주들 입장에서는 이같은 정부의 대응에 박수를 보내겠지만, 정부의 개입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당장 야당 등에서는 ‘관치금융’이라며 비판에 나서고 있다.
감독권과 인허가권을 가진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들이 많은 이익을 내고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올려준 것을 문제 삼게 되면 앞으로는 은행들이 어느 정도 이익을 내야할지, 성과급은 어느 수준으로 책정해야 할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까. 아니면 서로 협의해서 은행들끼리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정부에 찍히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권력이 금융회사 인사나 대출에 개입하는 것이 관치”라며 관치 논란을 부인했다고 하지만 민간 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관치가 아닐 수 없다.
만일 현재의 과점체제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제도 개선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민주정부가 취해야 할 방도일 것이다. 과거처럼 군기를 잡듯이 압박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결국은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시장의 자생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시장의 자율성 확대를 외쳐온 정부가 민간 은행을 압박해서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경쟁이 활성화 하도록 하여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민주정부가 시장을 대하는 방식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청사진으로 제시한 6대 국정목표 중 하나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임을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호원 딜라이트닷넷 대표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