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기업들의 투자계획 발표 어떻게 봐야 할까?
[딜라이트닷넷 정호원 기자] 대기업들의 투자계획 발표가 30일에도 이어졌다. 지난 24일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롯데와 한화를 필두로 한 재벌그룹의 투자계획 발표가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의 미래를 기약하는데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투자인 만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이번에 발표된 대기업들의 투자계획을 보면 종전보다 규모가 커졌고, 미래 성장사업에 집중적으로 돈을 투입하겠다는 것이어서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대기업들의 미래가 기대되기도 한다.
현재까지 발표된 투자규모 합계는 1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이고, 인력 채용규모도 약 30만명에 이른다. 일부 매체에서는 투자발표 금액을 합한 수치를 집계하기도 하지만 각기 발표기준이 다른 것이어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이러한 숫자만 보면 금방이라도 우리 경제의 활력이 크게 늘어나고 고용환경도 급격하게 개선될 것 같다는 환상마저 갖게 된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각 대기업이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 외에 수소 등 청정 에너지와 배터리 신소재, 전기차와 도심항공교통(UAM), 바이오와 헬스케어과 같은 친환경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기업들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식하고 지속가능성을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기업들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2018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각 그룹 총수와 만난 이후 각 대기업의 투자계획이 발표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와 약속한 것이니 일정한 부담을 떠안고 이행을 전제로 발표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약속한 기간이 지난 후 그것이 성실하게 이행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사후점검을 해서 실행여부를 평가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듯 싶다. 어떤 경위로 투자계획을 순차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정한 기준이 없다. 어떤 기업은 국내외 투자를 합해 발표하고, 어떤 기업은 국내 투자만 발표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또 경상적 투자도 포함시킨 기업이 있는가 하면 신규로 추진하는 미래사업 위주로 발표한 그룹사도 있다.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형식을 취한데다 일정한 기준이 없고 큰 카테고리로 묶어 발표했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실천했는지 검증하기 어렵고, 따라서 설사 부실하게 이행을 했다고 해도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개혁연대가 대기업들의 투자계획 발표와 관련해 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투자계획 발표는 조금 야박하게 평가하면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적 행보를 보인데 대한 재계 차원의 ‘성의표시’ 내지는 ‘립서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발표를 꼭 부정적으로 보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투자는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총수의 잘못된 투자 의사결정으로 한 순간에 망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가 친기업적 정책을 편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투자를 늘릴 기업은 거의 없다고 본다.
전 정부가 그랬듯이 기업의 옆구리를 찔러 투자계획 또는 고용계획을 발표하도록 한다고 해서 그대로 실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업이 활성화하면 투자와 고용은 자연스럽게 늘어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확대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의 투자의사가 확인된 만큼 기왕이면 국내에 투자하도록 하고, 또 해외의 공장을 국내로 유턴하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기업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편다면 그것은 노력한 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다. 투자규모 숫자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고 그것이 유·무형자산으로 국내에 투하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숫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