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원 칼럼] 'KT 사태' 피해 보상, 호통이 능사가 아니다
다중 소액 피해의 합리적 해결 위한 사회적 장치 마련해야
[딜라이트 정호원 기자] KT가 지난달 30일로 인터넷 장애와 관련한 고객보상 전담 지원센터 운영을 종료했다고 한다. 지난 10월25일 발생한 전국적인 인터넷 장애사태와 관련한 보상문제가 사실상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인다.
KT는 지원센터를 통해 접수된 7200건의 문의 가운데 소상공인으로 접수를 요청한 1470건을 심사해 인정되면 모두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피해액을 명시한 130여건에 대해서는 검토를 거쳐 보상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물론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카페사장연합회, 전국가맹점주연합회 등 소상공인 관련 단체들은 KT의 보상안이 실제 피해를 보상하기에는 미흡하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또 소상공인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 일부에서 KT에 대해 보다 실질적인 보상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성의표시’ 하는 정도다.
KT가 내놓은 보상안은 약관에 비춰보면 가입자들의 피해 보상을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마비로 인해 겪은 가입자의 불편과 체감상 피해에 비해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소액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에계, 단돈 1만원도 안되네”라는 얘기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KT 약관에는 하루 3시간 이상, 한 달 누적으로 6시간 이상 장애사고가 있는 경우에 가입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 10월25일 KT의 인터넷 장애사고가 약관 규정에 못미치는 89분간 계속됐는데도 경영진은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약관과 관계없이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KT가 내놓은 보상안은 개인과 기업 고객에게는 그 10배 수준인 15시간을 기준으로, 인터넷과 IP형 전화서비스를 이용하는 소상공인에게는 10일치 요금을 감면해주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입자별 요금제에 따라 보상액이 다르겠지만 대략 개인고객에게는 약 1000원, 소상공인에게는 7000~8000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 것이다.
개인별로 보면 그야말로 ‘껌값’에 불과하지만 대상자가 많다 보니 전체 보상액이 350억~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됐다.
KT는 개별 가입자가 겪은 피해를 산정하기 어려워 장애가 생긴 상품의 가입비를 기준으로 보상액을 산정하는데 반해, 소상공인은 장애로 생긴 피해를 중심으로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통신 장애사고에 따른 피해 보상을 위해 약관에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 장애사고를 염두에 두고 마련한 장치가 아니어서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리는 입장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집단인 KT가 조 단위 이익을 내고 있는 만큼 약관에 얽매이기 보다는,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피해 보상에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KT의 보상안에 "미흡하다"며 비판적인 정치권 인사들의 목소리에는 이런 기조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KT 경영진으로서도 고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보상안과 관련해 사회적 비난 여론도 의식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이사회와 외국인 및 소액 주주들의 반응도 신경을 써야 한다.
대기업의 이사회가 여전히 ‘거수기’에 불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는 이사들이 본인들에 대한 소송 제기를 우려해 깐깐하게 심의를 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산정근거가 없다면 이사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있다.
또 외국인 또는 소액주주들이 약관을 무시하고 경영진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과도한 보상을 했다는 이유로 경영진 또는 이사회 구성원들을 배임 혐의로 고소・고발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일부 생명보험 회사들이 자살보험금 지급 등과 관련해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배임 소송을 의식해 지급을 미루고 법원 판결에 따라 지급여부를 결정한 사례를 보더라도 이사회의 존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처럼 사고 당사자의 판단에 맡겨 피해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게 된다.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결책은 당사자 간 합의 또는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지만 이번처럼 피해자가 수백만, 수천만명에 달하는 사고에서는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도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몇십만원 또는 몇만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드는 소송에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이번처럼 전국적 또는 집단적으로 피해를 야기해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개인별로 보면 피해규모가 크지 않거나 소액인 유사사고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차제에 통신 네트워크 장애나 환경 오염과 같은 대규모 피해를 유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해 피해보상 문제를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별적으로 큰 손해를 본 특수한 경우는 소송으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피해는 정부의 조정기구나 관계 당사자들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시한다면 피해 보상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장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 못지 않게 유사 사고 시 신속하고 합리적인 피해보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도 정치권이 머리를 맞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유책 당사자에게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친다고 해서 피해 구제가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호원 딜라이트닷넷 대표/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