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 뗐지만... 美 압박에도 AI 패권은 '두 개의 지구'로

美 제재의 역설... 中 독자 AI 기술·인프라·글로벌 사우스 개척 가속화

2025-11-12     이건한
[사진=PIxabay]

 

[딜라이트닷넷=이건한 기자] 2025년 글로벌 AI 시장은 충격으로 시작해 팽팽한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기술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알리바바와 딥시크를 비롯한 자국 기업들을 앞세워 실리콘밸리와 대등한 수준의 AI 모델을 잇따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GPU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자국 NPU 개발과 인프라 구축 지원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일찍이 감지한 미국은 중국의 AI 굴기를 원천 차단하는 강한 압박 전략을 구사해왔다. 특히 이달 초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중국 시장용 GPU(모델명 B30A) 수출까지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산소호흡기조차 완전히 떼어버리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 전략은 '제재의 역설'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AI 산업은 질식사는커녕, 오히려 혹독한 환경에서 끈질기게 독자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AI 패권도 앞으로 얼마나 더 공고히 유지될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린다.

◆ '엔비디아 점유율 0%' 거인 화웨이 만든다

미국의 제재는 일부 성공을 거뒀다. 2022년 중국 AI 칩 시장의 95%를 장악했던 엔비디아의 점유율은 2025년 10월 기준 0%로 추락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는 중국에서 100% 철수했다"며 확인사살 멘트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문제는 엔비디아가 사라진 거대한 시장 공백을 중국 내 잠재적 경쟁자였던 화웨이가 고스란히 흡수한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 화웨이의 최신 NPU인 어센드(Ascend) 910C의 성능은 경쟁 제품인 엔비디아의 구형 H100 모델 대비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독자적 대안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GPU나 NPU의 성능과 전성비는 결국 개발 효율에 영향을 미칠 뿐, 저사양 칩이라고 해서 고성능 AI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자국 기술 '올인' 정책도 중국 AI 연관 기업들의 생존을 돕는다. 대표적으로 '신창(信創)' 정책이 있다. 이는 핵심 기술 인프라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중국의 국가적 자립 행보다. 특히 미국이 엔비디아 저사양 AI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것처럼, 지난 5일 중국 정부도 국가 기금이 투입되는 모든 신규 데이터센터에 대해 외국산 AI 칩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도 이를 뒷받침한다.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 칩은 엔비디아보다 전력 효율이 약 30~50%가량 낮아 데이터센터 운영비 폭증의 원인이 된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일 자국산 NPU를 탑재하는 데이터센터에 한해 에너지 요금을 최대 50%까지 할인해주는 에너지 보조금 카드까지 꺼내든 상태다.

◆ 미미한 차이... 미국과 대등해진 중국 모델

이런 정책 총력전 외에도 중국의 AI 기술력은 이미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2025년 11월 기준 중국의 주요 AI 모델은 글로벌 성능 벤치마크에서 미국의 최상급 모델들과 미미한 격차를 기록 중이다.

우선 인간 선호도를 기반으로 모델 성능을 평가하는 LMArena 리더보드에서 현재 알리바바의 Qwen3-max-preview(Elo 점수 1434)는 구글의 최신 Gemini-2.5-pro(1451점)와 앤트로픽의 Claude-opus-4-1(1447점)을 불과 몇 점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사실상 일반 사용자의 체감 평가에서 미국과 중국 모델이 사실상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는 기발한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6월, 중국 엔지니어들이 4.8PB(페타바이트)에 달하는 LLM 훈련 데이터를 하드디스크 수십 개에 담아 말레이시아로 운반한 사례가 보고됐다. 그들은 이를 엔비디아 GPU가 탑재된 현지 데이터센터에서 합법적으로 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델 학습용 디지털 데이터의 이동은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허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 외에도 제재 대상 기업들이 다양한 루트로 엔비디아 칩을 임대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이 중국 본토 봉쇄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거대한 대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지난 9월 브라질, 멕시코, 두바이, 말레이시아 등에 대대적인 글로벌 데이터센터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화웨이 역시 엔비디아 칩을 구매할 수 없는 중동(UAE, 사우디), 동남아(태국), 아프리카(이집트) 국가들에 자사의 어센드 칩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패키지로 수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확대 이상의 의미다. 전 세계 AI 시장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노스'와 중국 주도의 '글로벌 사우스'로 양분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 中 하드웨어는 아직... 시간 얼마나 남았나

다만 중국의 한계도 여전하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반도체 제조 역량이 꼽힌다. 현재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는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EUV 노광장비 없이 구형 DUV 장비로 5nm와 7nm 공정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막대한 비효율을 초래한다. 관련 업계와 여러 조사기관이 추측한 SMIC의 5nm 생산 비용은 TSMC보다 40~50% 더 비싸고, 수율도 3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효율 문제는 앞서 언급된 중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단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AI 지원에 드는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언제까지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중국이 최소 1~2년 내에 AI 소프트웨어를 넘어 제조 분야에서도 놀라운 '퀀텀 점프'에 성공해야 할 이유로 꼽힌다. 미국 역시 그간의 결과를 교훈 삼아, 단순한 압박 전략을 넘어 한층 고차원적인 중국 견제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