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8000억원에서 과징금 대폭 줄여 23개사에 962억원 부과
해수부·해운업계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공동행위"…소송 낼 듯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12개 국적선사들과 11개 외국적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62억원 부과 결정을 설명하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12개 국적선사들과 11개 외국적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62억원 부과 결정을 설명하고 있다.

[딜라이트 장덕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HMM, 장금상선, 고려해운 등 국내 선사 12개사와 CNC, 에버그린, GSL 등 외국선사 11개사 등 총 23개 국내·외 컨테이너 선사에 대해 해상운임 담합 책임을 물어 시정명령과 함께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담합을 도운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이하 동정협)에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65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해 5월 공정위 심사보고서에서 명시한 과징금 규모 약 8000억원의 9분의 1 수준이지만 해운업계는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활동이라며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고려해운, 장금상선 등 주요 국적선사 사장들은 2003년 10월 한∼동남아, 한∼중, 한∼일 3개 항로에서 동시에 운임을 인상하기로 담합했다. 

이후 동정협 소속 기타 국적선사, 아시아 항로 운항 국내외 선사들간 해운동맹(IADA) 소속 외국적 선사도 가담했으며 이들은 최저 기본운임, 부대운임의 도입과 인상, 대형 화주에 대한 투찰 가격 등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특히 이들은 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서로의 화물은 뺏지 않기로 하고 자신들이 정한 운임을 준수하지 않는 화주에 대해서는 선적을 거부했다. 

이들은 또 세부 항로별로 주간 선사·차석 선사를 정하거나 중립위원회를 설치해 합의 위반을 감시했으며 합의를 위반한 선사들에게 총 6억3000만원의 벌금을 물리기까지 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정기 컨테이너 해상화물 운송서비스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해운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예외적으로 공동행위가 허용되어 왔다"며 "하지만 공동행위의 경쟁제한적 폐해가 큰 만큼 세계 각 국은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일정한 요건 하에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EU와 홍콩 등은 운임에 대한 공동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정위는 정치권과 해양수산부,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상세한 조사자료와 함께 해외 사례까지 제시하면서 위법 행위에 대한 정당한 제재임을 강조했다.

지난해 5월 공정위가 최대 8000억원대의 과징금부과 추진이 알려지면서 해수부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며 공정위를 강력 비판했다.

실제 지난해 9월 국회 농해수위와 해수부는 해운사 간 운임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공정위 감독상임위인 정무위를 통해 과징금 취소를 강하게 압박했다.

해운선사 운임담합 구조(자료=공정거래위원회)
해운선사 운임담합 구조(자료=공정거래위원회)

◆ 해운법상 '공동행위' vs 공정거래법상 '가격담합'

최대 쟁점은 해운사들의 운임 등을 사전 합의한 행위가 해운법이 인정하는 공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에 해당하는지이다.

해운업계는 해수부에 18차례에 걸쳐 운임 인상을 신고했고 그 안에 공정위가 문제 삼는 120차례의 운임 합의가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수부 역시 15년 동안 19건의 주된 공동행위가 모두 신고됐으며 122건의 세부협의는 해수부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지난 7월 유권해석하고 업계 손을 들어줬다. 

해수부는 또 해운법 제29조에 따른 적법한 공동행위이며 '다른 법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한다'는 공정거래법 제58조에 따라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신고의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선사들은 공동행위를 한 후 ▲30일 이내 해수부장관에게 신고 ▲신고 전에 합의된 운송조건에 대한 화주단체와 서로 정보 교환 및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선사들은 120차례 운임 합의에 대해서 해수부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았으며, 120차례 운임 합의에 대해서 신고 전 화주단체와 서로 충분히 정보를 교환하거나 협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위 운임 담합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아니며 이러한 불법적인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18차례 운임회복(RR) 신고 내에 120차례 운임합의가 포함됐다'는 주장에 대해 공정위는 "18차례 신고와 120차례 운임합의는 전혀 별개이고 18차례 신고에 120차례 합의가 포함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선사들이 주장하는 운임회복(RR)과 최저운임(AMR)은 서로 다른 운임인상 방식일 뿐만 아니라 선사들은 화주단체와의 협의를 회피할 목적으로 최저운임을 합의한 뒤 2003년 10월 이후부터 운임회복으로 신고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특히 공정위는 선사들이 타 선사들의 합의 위반사항을 감시하고 총 6억3000만원의 벌과금을 부과했으며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까지 한 것을 엄중한 위법행위로 보고 있다.

◆ 과징금 8000억원에서 962억원 감액

지난해 관련 선사들에게 통보한 심사보고서에는 과징금 규모가 8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정치권과 해수부의 전방위 압박이 있은 후인 11월경에는 과징금 금액이 2000억원대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이날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의 9분의 1,  11월경 예상했던 2000여억원의 절반 수준도 안 되는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이는 공정위가 정치권 등의 압박도 부담이 됐지만 원칙보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조 위원장이 “이번 해운담합 건을 처리하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성어를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화이부동이라는 네 글자에 해운업의 특수성과 중요성은 공감하지만 반경쟁적 행위를 감독하는 경쟁당국으로서 역할은 포기할 수 없는 공정위의 고민과 고충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감액배경에는 현실적으로 최근 해운선사가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지난 10여 년간 쌓인 적자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 우선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해운법과 업계관행도 무시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도 해운법에서 허용하는 공동행위라는 명분이 있고 그동안의 업계 관행으로 이어져 온 현실을 외면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해운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해수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업계 반발...행정소송 추진

한국해운협회는 “해운기업들은 해수부의 지도감독과 해운법에 근거해 지난 40여 년간 모든 절차를 준수하며 공동행위 펼쳐왔던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음에도 공정위는 절차상 흠결을 빌미로 애꿎은 해운기업들을 부당공동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공정위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고, 해운 공동행위의 정당성 회복하기 위해 행정소송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해운법 제29조상 공동행위 허용하고 있는 점 등을 공정위에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으나 공정위가 업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현실과 왜곡된 내용으로 일관되게 주장해 해운업계가 부당하게 공동행위를 한 불법 집단으로 매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공정위 역차별 조사도 지적했다.

지난 10일과 14일 한국해운조합과 한국해운협회는 “정작 일본 및 유럽 대형 선사들에 대한 조사나 심사가 누락돼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에 반발했다.

한편 공정위는 한~중 항로, 한~일 항로에서의 운임담합 건에 대해서는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하고 심의할 계획이다.

사업자별 과징금 부과내역(자료=공정거래위원회)
사업자별 과징금 부과내역(자료=공정거래위원회)

 

저작권자 © 딜라이트닷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